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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암서원(舟巖書院)

[유적탐방] 주암서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21호, 전주 최씨 최덕지





안녕하세요. 한국인의 족보입니다. 

오늘의 유적지는 전주 최씨 문성공계 중랑장공파 연촌공파의 파조인 최덕지(崔德之)의 위패를 모신 주암서원입니다.


 



주암서원은 전북 임실군 지사면 방계3길 46 (방계리 713-1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 인조 8년(1630년)에 세웠으며, 광무 원년(1897년)에 철폐되었다가 그 후 1907년에 다시 세웠습니다.
주암서원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21호로 지정 되어 있고, 이 서원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최덕지, 암계 최연손, 율계 장급, 사촌 장경세 등의 위패를 모신 서원입니다.
학문이 매우 뛰어났던 최덕지는 이곳 이외에도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에 있는 녹동서원과 전주의 서산서원에도 위패를 모셨으며, 최연손과 장급은 지극한 효심을 지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던 장경세는 시문에도 능하여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이들을 제사지내는 장소인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입니다.
공부하는 강당 역시 팔작지붕으로 앞면 4칸, 옆면 3칸 규모의 건물입니다.

 

전주 최씨 최덕지 (崔德之, 1384~1455)

연촌공 최덕지는 전주최씨 문성공계 중랑장공파 연촌공파의 파조로 휘는 덕지(德之)이고 자는 우수 또는 가구 이며 호는 연촌 또는 존양당, 시호는 문숙(文肅)입니다.

연촌공은 1384년에 4세 월당공 최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405년(태종 5년)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한 뒤 추천을 받아 사관이 되었고, 1409년 교서관정자로서 원구단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 오제제문을 준비 못하여 한때 투옥, 뒤에 감찰 등 삼사의 청요직을 거쳐, 외관으로 김제군수, 남원부사 등 여러 주, 군을 다스렸습니다.
 





남원부사를 사퇴한 뒤 영암의 영보촌에 내려가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는데 이때 존양이라는 호를 사용하게 됩니다.

문종이 즉위하자 그를 불러 예문관직제학에 임명, 그의 학문을 높이 평가하였으나 그는 아직 치사할 나이가 안 되었는데도 연로함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당시 풍습으로 볼 때 명예로운 직책을 사임하고 귀향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므로 그의 높은 덕과 행동을 칭송하며, 다투어 시부를 지어주고 노자를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72세에 죽으니 영암의 주민들이 사당을 세워 제사하고 존양사라 이름지었습니다.
그는 세종 때 배출된 많은 학자 중 한 사람으로 정치적 격동에 휘말려들지 않고 문신이자 학자로서 명예로운 삶을 마쳤습니다.



임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자동차로 약 24분 정도 소요됩니다.
임실에 들리시면 주암서원에 방문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