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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탐방]통천최씨 최윤덕, 관곡서원

[유적탐방] 
통천최씨 최윤덕, 관곡서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호 보유-





안녕하세요. 한국인의 족보입니다.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에는 관곡서원을 비롯,
영천서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20호),
주암서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21호), 그리고 정몽주를 모신
덕암서원 등이 있습니다.





주소 : 전북 임실군 지사면 관기1길 32-7 (관기리 208번지)
관곡서원은 조선후기 최윤덕 등 3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입니다.

 



1736년(영조 12년)에 이 지방 유림(儒林)이 최윤덕(催潤德), 이적(李迪),
이형남(李亨南)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했습니다.





1868년(고종 5년)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52년에 후손들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관곡서원은 문화재로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전북 유형문화재 198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향사일은 음력 2월 17일 입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 기와집이고 내삼문은 2칸의 팔작집입니다. ​
외문(1칸)에는 경천문(景天門)의 현판이 있고 그 바로 안쪽의
관곡사부설충보기적비(館谷祠復設衷寶紀蹟碑)와 관곡서원 현판이 있고
그 앞에 요사가 있습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가 있습니다.





<최윤덕>(1376~1445)

자는 여화(汝和), 호는 임곡, 지중추부사 운해의 아들로,
창원군 북면 내곡리 무등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으며, 어느날 소에게 꼴을 먹이러 산에 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화살 하나로 쏘아 죽인 일화도 있습니다. ​

권근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410년(태종10) 무과에 급제하였습니다.
일찍이 무과에 올라 부친을 따라 여러 전장에서 무공을 세웠고,
벼슬은 병조판서를 거쳐, 무신으로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였습니다. ​
또한 최초의 영중추원사가 되었으며 궤장을 하사받았습니다.

세종 치세에 이종무와 더불어 대마도를 정벌하였고,
북방의 여진족을 정벌하고 4군을 설치하여 압록강유역의 국경선을 확정하였습니다.
전국에 여러 읍성과 산성을 축성하여 축성대감으로 불렸습니다.





시호는 정렬(貞烈)입니다. 성품이 자애롭고 근검해서 공무의 여가를 이용,
묵은 땅에 농사를 지었습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남편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여인의 호소를 듣고
그 호랑이를 잡은 뒤에 배를 갈라 남편의 뼈를 찾아 장사를 지내게 해준 일도 있습니다.
정렬공 최윤덕의 묘는 경남 창원시 북면 대산리에 있습니다.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98호)

관곡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일괄 문서들입니다.
서원 관계 서적이나 문서들이 희귀한 편인데 관곡서원에 관계되는
일괄 문서를 두루 구비하고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고문서 중에는 서원 접인(接人)의 잡역을 금해줄 것을 진정하여 수령으로부터
승인받는 과정을 알수 있게 하는 것, 서원 유안(儒案)에 평민이 입록(入錄)되고
있으며 유생의 확보가 재정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
서원 유생을 수령이 차정(差定)하고 그 차첩(差帖)도 수령이 발행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있어 18-19세기 사회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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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문화유적의 마을 임실군 지사면에 위치한 관곡서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