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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탐방]순흥 안씨 안처순, 영천서원

[유적탐방] 순흥 안씨 안처순, 영천서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20호-






안녕하세요? 한국인의 족보입니다. 
오늘의 유적지는 순흥안씨 안처순의 영천서원입니다. 

영천서원(寧川書院)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기묘사화로 희생된
안처순을 중심으로 정환·정황·이대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서원입니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20호로 지정되어 있고
전북 임실군 지사면 영천3길 33 (영천리 203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영천서원은 광해군 11년(1619)에 세웠으며, 숙종 12년(1686)에 나라에서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고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왔습니다. 
고종 5년(1868)에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에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경내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5칸의 강당, 대문 등이 있습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입니다. 
공부하는 장소인 강당 역시 맞배지붕으로 꾸몄으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우에는 안처순·정환·정황·이대유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처마는 겹처마입니다.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중앙에는 상부가 교창(交窓)형식으로 된
사분합문을 달았는데 좌우측에는 같은 형식의 두짝 열 개의 봉합문이 있습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습니다. 
가구(架構)형식은 대들보위에 짧은 동자기둥을 놓고, 종보를 울린 다음
종마루를 받치고 있는 사다리꼴의 대공을 얹었습니다.





매년 2월 중정(中丁)주 01)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입니다. 
유물로는 《주서절요 朱書節要》 12책 등 100여 권의 문헌이 남아 있습니다.






- 주벽 안처순(安處順, 1492∼1534)

안처순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지방학교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한 사람입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순지(順之), 호는 기재(幾齋)
사재당(思齋堂). 남원 출신. 
1513년(중종 8)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17년 홍문관박사가 되었으나,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하여
구례현감으로 제수되었습니다.

이 해 2월 구례현감으로 제수될 때 왕이 불러서 학교를 일으키라고 교시하자,
그는 ≪근사록 近思錄≫을 간행, 보급하여 지방학교 진흥에 노력하였습니다. 
1519년 기묘사화에 이행(李荇)과 함께 연루되었다가 겨우 화를 면하고
은퇴하였다가 성균관학관(成均館學官)·경성교수(鏡城敎授)를 지내고,
1533년 전적(典籍)으로 제배된 뒤 양현고주부(養賢庫主簿)·
봉상시판관(奉常寺判官)에 이르렀다.
43세에 병을 얻어 남원부 흑성산(黑城山)에 안치됨으로써 일생을 마쳤습니다. 
 
영천 서원은 근처에 있는 30여개 서원 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권위가 높아
뛰어난 학자들이 멀리서까지 몰려왔다고 합니다.
전북 임실에 오시면 서원들이 많으니 영천서원에도 꼭 한번 방문해보세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