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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서원(金烏書院)

[해평길씨 길재 금오서원 -경북기념물 제60호-]


오늘의 유적지는 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리276에 위치한 해평길씨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금오서원입니다.



1567년(조선 명종 22년)에 지역의 사림이 선산부사에게 길재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뜬 금오산에 서원과 사당을 건립하기를 청하였고, 
당시 선산부사 송기충이 경상감사에게 이를 전하여 장계를 올려 재가를 받아
1570년 (선조 3년)에 금오산 아래의
지금의 금오지 자리에 서원을 건립하였습니다.



1572년에 송정 최응룡이 '금오서원봉안문' 을 지어
길재의 위패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1575년에는 사액 현판과 서책 하사되었으나,
임진왜란때 건물이 전소되면서 함께 소실 되었습니다. 
난이 끝나고 1602년 금오산인 외진 곳이라는
서원을 지킴에 어려움이 있다는청에,
선산부사 김용이 지금의 선산읍 남산에 복원하게 되었고 
1609년에 중건하였습니다.

금오서원은  길재 이외에도
김종직, 정붕, 장현광의 5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길재(1353-1419년) 
 
본관은 해평, 자는 재보, 호는 야은 또는 금오산인 입니다.
아버지는 지금주사 길원진이며, 어머니는 판도판서에 추증된 김희적의 딸입니다.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말의 삼은으로 불리며, 
고려후기의 문신이자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입니다.

조선 전기 [야은집], [야은속집], [야은언행습유록] 등을 저술한 학자입니다.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선산에 낙향하였습니다. 
조선 건국 1400년 (정종 2년)세자 이방원이 태상박사 벼슬을 내렸으나 
두 왕을 섬길 수 없다 거절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김숙자, 최운룡, 김종직 등을 통해 사림파로 학맥이 계승되었습니다